[홍성, 예산답사후기] 그들을 어떻게 기억할것인가

서울KYC 근현대사 아카데미! <독립운동가들의 고향을 찾아서>
7월 답사는 홍성과 예산입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분들을 만나게 될까요?

박헌영, 김좌진, 한용운 그리고 윤봉길을 만나러 갑니다.
이번 답사는, 성균관대 이신철 선생님과 동행했습니다.

사회주의운동의 대명사, 조선공산당의 중심 박헌영!
조선의 독립과 해방, 혁명을 위해 투쟁해왔고
해방공간, 조선노동당과 남로당의 대표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다
미군정의 탄압으로 월북, 북에서는 미제의 간첩이라는 이유로 처형된 비운의 주인공입니다.
남북 대립과 분단의 상황에서, 모두에게 잊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박헌영선생은 예산출신으로, 이곳에서 태어나서 대흥보통학교를 졸업합니다.
생가터, 어린시절 자랐던 집터, 다녔던 학교. 20리가 넘는 길을 걸어다닌 통학로..
어느곳 하나, 그의 흔적을 제대로 보여주는 곳은 없습니다. 그 흔한 표지석 하나 없네요.
박헌영선생의 아들인 원경스님이 답사했던 옛 사진을 들춰보고, 주소를 찾아내고
여기저기 남아있는 흔적을 끼워맞춰서 겨우 이곳에 올 수 있었습니다.

박헌영은 당시 ‘조선 인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지도자요,
친일파들에게는 가장 미움받는 사람’이라고 평가받았다고 합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생각해봅니다.
언제쯤이면, 박헌영 선생이 조선해방과 혁명을 위해 온몸 던져 싸웠던 역사를 제대로 복원할 수 있을까?

이제 홍성으로 이동합니다.
홍성에는 백야 김좌진 장군,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지와 기념관이 있습니다.

김좌진 장군은, 가산을 정리해 학교를 운영하며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서다,
1918년 일본의 감시를 피해 만주로 건너갑니다.
3.1운동 직전 무오독립선언서 39명의 민족지도자 중 한사람으로 서명하고,
대종교 서일총재를 중심으로 한 대한정의단에서 군사 책임을 맡습니다.
1919년부터는 북로군정서로 개칭하고, 총사관련이 되어 독립군 편성에 주력합니다.
일본군이 만주로 출병하자, 독립군을 백두산으로 이동시키던 중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만나 전투가 시작되고,
홍범도 장군 휘하 부대와 합동작전을 펼쳐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여러독립군대가 연합해서 만든 승리, 이것이 바로 청산리대첩입니다.
이후에도, 신민부를 창설해 총사령관이 되어 독립군 양성에만 전념하지만,
1930년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홍성은 만해한용운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조선불교유신론을 통해 불교의 대중화 작업을 이끌고,
3.1독립운동때 불교계를 대표하며 민족대표33인으로 독립선언서를 작성했으며
님의침묵 시집을 발간한 민족시인이기도 했습니다.
1927년 신간회가 만들어질때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항일운동을 이어나갔습니다.
만해한용운 선생과 그의 아들 한보국 선생은 사회주의운동가로,
서대문형무소에 나란히 수감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은, 다시 예산으로 넘어와 매헌 윤봉길 기념관과 생가지터입니다.
윤봉길의사는 3.1운동의 민족적 분노를 목격하고, 식민지 노예교육 거부하며 학교를 자퇴합니다.
이후, 1926년 농촌계몽운동을 위해 야학을 개설하고, 이곳에서 농민독본을 저술합니다.
*윤봉길의사의 초기 활동은, 박정희 군사정권이 추진한 새마을 운동의 모태로 활용 되기도 합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영향을 받아, 민족운동에 대한 방향전환을 모색하던 중
만주 독립군 근거지를 살펴보고, 193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에 도착합니다.
김구선생을 만나고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한인애국단에 들어갑니다.
이후, 그 유명한 ‘홍커우공원 폭탄투척’사건을 준비합니다.
일왕의 생일은 천장절을 맞아 1931년 만주침략과 1932년 상하이사변,
전승축하기념식장에서 벌어진 벌어진, 식민지 조선의 용기있는 청년 윤봉길의 거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고 합니다.
특히, 중국 중앙군 사령관 장개석(蔣介石)은 “중국의 대군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 용사 한 명이 해냈다”며
김구 선생에게 항일 무장투쟁을 위한 지원을 약속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바로 체포되어 일본에서 사형을 당합니다.

예산, 홍성의 독립운동가를 만나며 그들의 생을 들여다 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큰 규모의 기념관을 짓고, 생가지를 복원하고, 사당을 만들어놓았지만,
생각보다 찾는이 없는 썰렁한 모습에 놀랐습니다. 이날 폭염경보가 떠서 그랬을까요…

그리고 개별 “인물”을 중심으로, 관련 “사건”만 부각해서 전시해 놓은 모습속에
그와 함께했던 수많은 이름없는 사람들과, 이름없는 사건들이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은 아니어도, 역사의 큰 물줄기에 함께했던 사람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복원하고,
제대로 배우자는! 다짐을 다시한번 해봅니다.

폭염경보 속 야외활동 자제!라는 재난 문자가 쏟아지는 가운데
홍성과 예산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8월은 한번 쉬고,
9월 대구 답사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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